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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__________________.

문장완성검사에서 나오는 나의 엄마와 관련된 항목들입니다. 한번 빈칸을 채워 보시겠어요?
‘나’를 알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나와 부모의 관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완벽한 대상과 연결되고 싶은 나
코헛은 ‘나’의 자기애적 특성이 ‘나’의 전능감, 과대감 뿐만 아니라 이상화 부모 이마고, 즉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던 부모의 이미지가 ‘나’에게 투영되어 있다는 말합니다. 유명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위니컷이 “홀로 존재하는 아기는 없다”고 말한 것처럼, 아기는 엄마의 존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출산한 후 6개월 정도는 모성몰입기간을 거치는데 이 때 엄마는 아이의 울음, 표정, 몸짓,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지요. 아기는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었지만 엄마와 아기는 서로 심리적으로는 아직 분리되지 않은 융합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유아의 ‘나’는 자신만의 ‘나’가 아닙니다. 처음 만나는 대상인 ‘엄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함께 반영된 ‘나’이지요.
취약한 유아는 나보다 강하고 완벽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원합니다. 유아가 완벽하다고 느끼는 부모가 유아 전체의 몸을 안아줄 때 그제서야 존재의 불안을 딛고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침착하고 흠 없이 완벽하며 전능한 이미지”의 대상과 융합되길 원합니다. 완벽한 대상과 연결되어 나 역시 그의 일부로서 완벽한 존재임을 경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아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최고입니다. 최고인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 건 당연한 욕구죠.
유아가 부모에게 안기고 싶을 때 부모가 기꺼이 이를 허용하고 즐거워할 때 유아는 건강한 이상(ideal)과 기준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취약해진 자녀가 자신에게 의존하고 싶고 안기고 싶은 욕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평생 그런 이상화된 대상을 찾아 헤맵니다.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줄 수 있는 남자친구, 배우자, 선생님, 상담자, 목회자…. 주로 특권, 권력, 아름다움, 지성, 도덕, 영적 수준에서 이상화할 수 있는 대상들이죠.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가 결핍된 사람들은 이상화할 수 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에만 자신을 가치 있게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과 연결이 끊어졌을 때 ‘나’가 깨어진 느낌, ‘나’가 텅빈 공허한 느낌에 자주 시달립니다.
엄마가 되었지만 나 스스로의 불안이나 우울을 달래기 어렵나요? 그렇다면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욕구가 잘 채워지지 않아서일 수 있습니다. 그 결핍을 마주볼 수 있다면, 혼자 불안과 좌절을 견뎌냈을 ‘나’를 안아주세요. 스스로를 안아주기 어렵다면 안전한 대상과 함께 나의 불안을 스스로 진정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한 슬픔을 애도한 후에는 이제는 부모가 아닌 ‘나’ 스스로 나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주봄 질문>
나는 어떤 부모를 원했나요?
그리고 지금은 어떤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참고도서: 홍이화 <하인츠 코헛의 자기심리학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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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린 시절 어떤 부모를 꿈꿨나요?
정신과의사 최영민 교수님의 <쉽게 쓴 자기심리학>에는 이런 부모가 나옵니다. 이제 막 일어서기 시작한 아이가 아빠의 손바닥 위에 서 있으려 안간힘을 쓸 때, 아빠는 아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지지해 줍니다. 아이가 아빠의 손바닥 위에 간신히 서게 되었을 때 이 아빠는 “우리 아들 정말 최고다!! “라고 엄지척을 해주었어요. 아이의 과대감, 전능감에 반응해서 아이가 그 성취를 자신이 해낸 것으로 느끼에 도와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 아들이 아빠와 공군 비행장에 놀러 갔어요. 제트기가 굉음을 내며 이륙을 하려 할 때, 아들은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그 때 이 아빠는 “우리 아들 무서웠지…. 괜찮아. 아빠가 안아줄께.”하며 아이를 따뜻하게 보듬습니다. 아빠에게는 여전히 최고인 아들입니다. 그리고 최고인 아들의 연약함도 수용할 때 아들의 불안은 가라앉고 다시 안정감을 찾습니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한 아이들은 세상에서 좌절을 경험할 때 부모라는 안전기지에서 잠시 불안을 다스리고 세상을 탐색하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라는 안전기지는 자신 안에 내면화되어 스스로가 안전기지가 되어 주는 단단한 ‘나’의 성격 구조가 형성됩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권경인 교수의 <엄마가 늘 여기 있을게>에는 이런 예시가 나옵니다. 교수님이 오랫 동안 상담을 했던 대형교회 목사님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 아들이 대입을 4수를 하려고 결정한 시점에서 술에 만취해 교회 마당을 가로질러 사택으로 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담임목사 아들의 실패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불성이 된 모습의 아들을 본 목사 아버지의 마음은 참 속상하고 괴로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행동은 놀랍습니다. 그 때가 겨울이었는데, 아들 방 쪽에 나무가 보였다고 해요. 이파리 하나 없이 가지가 앙상한 겨울나무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저 나무가 죽은 것 같지? 정말로 죽은 것 같지? 그런데 봄이 오면 잎이 난단다. 네가 지금 죽은 것만 같지? 네가 겨울나무야.”
그 아들은 그 날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랍니다.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한 것 같은 순간에, 아버지가 최고의 아들인 연약함을 품고 아이가 가진 좋은 것을 끝까지 유지시켜 주는 그런 대상이 우리가 꿈꾸는 부모의 모습 아닐까요. 만일 나에게 그런 부모의 경험이 별로 없다고 느껴진다면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거나 위로하기가 정말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의 안아줌으로 나의 불안이 진정되고 위로받은 경험이 있어야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셀프 수딩 기능을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어린 시절 나의 연약함이 중요한 대상에게 얼마나 수용되었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좌절하고 실패해서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때, 내 연약함이 수용된 적이 별로 없었다면…내가 그런 대상을 상실했던 것에 대한 애도가 필요해요. 그리고 현재의 중요한 대상들과 애도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그 때 마땅히 받았어야 할 위로를 받지 못한 경험을 안전한 대상과 나누고 애도하며 내 상처를 돌볼 때, 아이의 연약함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어요.
인스타 질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위로가 나를 지탱해 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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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춰주고 진정시켜주는 대상, 자기대상
코헛의 <자기심리학>에서는 자기애가 건강하게 발달하려면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응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기대상은 selfobject라고 하는데 자기(self)와 대상(object)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나의 심리적 기능을 대신해 주는 대상을 말합니다. 아기는 생애 초기 나와 타인을 구별하기가 어렵죠. 사람은 나 자신보다 “타인”에 대한 감각을 먼저 익힙니다. 나와 한몸이었고,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나를 재워주는 엄마라는 존재를 나와 동일한 존재처럼 느끼죠. ‘자기’와 ‘대상’을 구별할 수 없는 유아는 아직까지 심리적인 기능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신 내가 가만 있어도 웃어주고, 배고플 때 먹여주고, 불안할 때 나를 달래주는 엄마의 반응을 통해 “나는 사랑스럽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크는” 자기를 경험하게 됩니다. 엄마라는 “자기대상”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기를 느낄 수 있는거죠. 자기대상의 반응에 따라 나를 가치 있게 느끼는 자존감도 형성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때,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J. W. 괴테)
유아가 나와 타인의 경계를 인식하게끔 하는 부모의 중요한 행동은 바로 스킨쉽입니다. 인간은 작은 아기일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의 전부를 안아줄 수 있어요. 부모가 아기의 몸을 전체적으로 감싸 안아주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인식하게 됩니다. 아이의 몸 전체를 안아줌으로써 나와 타자를 구분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관계적 존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자라면서는 더 많은 대상들과의 교류 속에서 차츰 나라를 존재를 더 세밀하게 느낍니다. 이렇게 ‘자기감’이 발달하는 것이죠.
엄마는 나의 첫 ‘자기대상’입니다. 자기대상이 공감적 반응으로 양육할 때 아이는 자기애를 건강하게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과대자기의 전능감, 과시감도 건강한 포부와 야망으로 발전하고, 이상화 부모 이마고의 측면도 건강한 이상과 기준으로 성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대상의 공감적 반응이 만성적으로 실패하게 되면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좌절은 견딜 수 없는 좌절으로 남습니다.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그 트라우마가 재연되는 성격 구조와 대인관계의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자기대상은 엄마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아빠를 인식하고, 그 외의 다른 대상들을 경험하면서 자기대상들은 폭넓어집니다. 사람에만 한정되지도 않습니다. 책, 예술, 음악 또는 이상이나 사상을 통해서도 자기대상 경험이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첫 자기대상은 엄마입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대상을 통과해서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느낌을 발달시킵니다. 그러니 엄마라는 역할은 때론 참 버겁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의미 있는 대상이 되어 볼 수 있을까요?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 어떤 심리적 의미인지만 깊게 인식하는 것으로도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이에게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다음의 문장을 한번 완성해 보셔도 좋습니다. 첫 자기대상이었던 나의 엄마는 정말 어땠나요?
나의 엄마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엄마와 나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의 엄마를 좋아했지만 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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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헛은 ‘자기대상’에 대해 설명한다.
자기-대상 → 자기대상(selfobject)
심리적 자기가 없던 아기는 엄마를 나처럼 여긴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가 처음 만나는 대상은 엄마이다. 가장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도 엄마이다.
뱃속에서 10개월을 함께 지낸 이도 엄마이다. 엄마는 아이가 만난 첫 세상이다. 대상에 대한 첫 밑그림이다. 첫 사랑일 수도.
자기대상의 개념 (과대자기, 이상화 부모 이마고)과 사례.
내가 꿈꿨던 엄마
엄마와의 적절한 상호작용
“공감” 과 “최적의 좌절” (여긴 간단하게 후술에서 자세히)
내 전능감, 과대감은 어린 시절 꿈과 관련.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이상화 대상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
내가 꿈꿨던 부모는 어떤 모습?
자기애의 건강한 발달
병리적 발달.
“가장 성숙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자기의 자기대상이 된다. 이는 평생 자기가 필요로 하는 자기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그/그녀가 가장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홍이화 <하인츠코헛의 자기심리학 이야기1> p.6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