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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엄마, 나와 마주보다

Ver01)
엄마로 살아가기가 어떠신가요?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든, 가사와 육아만 전담하든, 어떤 형태로든 나와 엄마로서의 삶을 병행하든지 간에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은 녹록치가 않습니다. 엄마가 되기 이전에 나의 24시간은 나를 중심으로만 설계하면 그만이었죠. 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에는 소중한 아이들의 삶도 내 삶의 일부로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면 24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생활해도 늘 시간이 모자랍니다. 남편을 포함한 조력자들과 가사와 육아를 분담한다고 해도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일, 가사, 육아는 엄마를 지치게 하지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두 사람, 세 사람의 인생을 돌봐야 하니 시간도, 에너지도 부족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훨씬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엄마들은 자녀와 일찍 분리되어 자신의 일에 더 매진합니다. 조력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졌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도 나 자신과 엄마의 정체성을 잘 통합하지 못한다면, 자녀들이 견디기 어려운 애착의 손상을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정서적 결핍으로 인한 문제가 생긴 이후에야 뒤늦은 후회를 하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나로서, 엄마로서 균형감 있게 살아가기란 참 어렵습니다. 엄마로서만 살자니 내가 없어지는 것 같고, 나로서만 살자니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고. 아빠들이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빠와 엄마의 심리적 무게감은 여전히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몸 속에 직접 키우고 출산하는 엄마라는 대상은 아이에게 아빠와 구별되는 독보적인 심리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고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에서 ‘엄마’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셨어요. 생명과 죽음을 모두 ‘엄마’와 연결시키셨지요.
“엄마 없다? 엄마 있네! 어찌 보면 그게 우리 인생의 전부라네. -이어령 <마지막 수업>”
그렇기에 엄마라는 이름은 다른 대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지만, 그만큼 무겁습니다. 이 시대의 엄마들은 더 이상 전통적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의 역할은 해내야 하지요. 나와 엄마로서 살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긴장감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저는 뒤늦게 심리학을 공부하며 이 긴장감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지금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엄마의 역할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늘 한계에 부딪혔지만, 심리학을 통해 저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저 자신을 수용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과도 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시야가 넓게 가지다 보니 심리학 외에도 교육학, 인문학, 예술, 운동 등의 여러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엄마들이 나 자신과 마주보고, 자라나고, 피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으로서도, 엄마로서도 말입니다.
저출산의 시대. 누구도 엄마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과연 나로서, 엄마로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엄마의 자리에서 잘 있으면서도 나 답게 살고 있거나 그렇게 살고 싶은 엄마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인사이드맘>은 엄마들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엄마들의 회복과 성장을 지향합니다. 3명의 엄마로 시작하지만 더 많은 엄마들과 웃고 울며 숲향이 나는 커뮤니티를 이루어가기를 바랍니다.
Ver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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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봄의 IM 스토리>
44 + 16.
내 나이 44. 엄마 나이 16.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 서 있다. 어쩌면 중반보다 더 왔는지도 모른다. 16년 동안 워킹맘으로 두 아이를 키웠고 변리사라는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 작은 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해 온지 벌써 12년.
40살을 코앞에 둔 시기, 우울증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늘상 해오던 크고 작은 의사결정이 왜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지. 직원들이나 고객들과의 관계도 힘겹게만 느껴졌다. 두 달에 3번씩이나 교통사고를 닐 정도로 기능이 망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죽을 것만 같은 느낌에 시달렸다.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한결 같이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도 있었다.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나를 조력해주시는 친정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큰 부족함이 없는 삶인 것 같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 삶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그렇게 첫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39살에야 나 자신을 마주볼 용기를 낸 것이다. 나를 마주보는 첫 경험은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6번의 상담을 받고서는 이제 그만받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쉬고 싶었다. 상담은 쉬었지만 혼자 강의를 들으며 심리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부터 그제서야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왜 우울하거나 불안했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내가 왜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심리학 공부를 할수록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커져갔다. 이듬해 난 심리상담 대학원에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를 마주보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가 전문 심리상담사의 길을 걷고 있다. 40살이 넘는 나이에 변리사와 1도 상관 없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나를 마주보고 나서야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알게 됐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삶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나라는 엄마는 아이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야 서로 편안한지도 예전보다 잘 알게 되었다. 관계의 파열음을 감지하는 센서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엄마로서 잘못했을 때 예전보다 빨리 감지하고 관계 복구를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이게 되었다. 나와의 마주봄은 이렇게 새로운 삶으로 나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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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서 나 자신을 마주보는 경험은 아프면서도 감사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지금의 ‘나’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그럴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내 안에는 괜찮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도 꺼내 보일 수 없었던 깊은 아픔을 누군가에게 공감 받는 경험은 근사했습니다. 그 아픔 때문에 형성된 나의 미숙함을 직면하게 되어 고통스러웠지만 견딜 수 있었습니다. 꽤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한 제 착각이 부서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괜찮은 엄마임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저 자신을 수용하고 나니 엄마로서 부끄러운 모습이 나오더라도 이전만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았고, 그럼에도 충분히 괜찮은 엄마임을 스스로 인정해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서야 나 자신과도, 엄마로서의 나 자신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된 거죠.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저의 무의식적 욕구와 기억들을 엄마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의 어린 시절이 자주 소환되었기 때문입니다. 꾹꾹 눌러 놓은 나의 욕구와 감정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주 자극되었습니다. 심리학과 상담을 통해 억압되어 있던 제 무의식이 의식화가 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통제할 수 없었던 감정과 욕구들을 점차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주 넘어지는 감정과 통제하기 어려운 욕구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존재들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 예전과는 다르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나와의 마주봄을 통해 이제야 성숙해지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마주본 이후에는 다른 엄마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이 깨져 자주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들, 자녀의 취약함을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엄마들, 자녀의 작은 실패도 견디기 어려운 엄마들, 자신의 욕구를 투사하면서도 그것이 자녀의 꿈이라 믿는 엄마들, 자녀에게 공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엄마들,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죄책감을 쉽게 느끼는 엄마들, 아직도 원가족에게서 분리되지 못해 진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는 엄마들, 자녀보다 나 자신이 훨씬 소중해서 자녀와 친밀해지는 것을 회피하는 엄마들, 훌쩍 자란 자녀들을 보낸 후 빈 가슴으로 공허해하는 엄마들….여러 엄마들의 모습 속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그녀들이 작은 용기를 내어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이전보다는 편하게 자신과 자녀를 수용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일에 제가 감히 작은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싹텄습니다. 엄마들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심리 콘텐츠를 작성하고 심리상담을 지속하려 합니다. 새롭게 떠나는 이 길에서 반짝이는 엄마들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